저희 엄마가 췌장암 진단을 받는 과정에 대해 글을 적었습니다.
췌장암 의심 진단, 평범했던 하루가 멈추다
2025년 1월 5일, 엄마는 건강검진을 받으셨습니다.
그날도 평소처럼 결과지를 받아들었는데, 거기엔 익숙지 않은 단어가 적혀 있었습니다.
"췌장암 의심 소견."
순간 숨이 턱 막혔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날부터 제 시간은 엄마의 병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검사, 기다림의 연속
1월 8일, 세브란스 병원 췌담도외과 황호경 교수님의 진료를 받았습니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CT와 PET-CT 검사가 이어졌고, 1월 22일 다시 진료를 받았습니다.
설 연휴 이후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경동맥 이슈가 있어, 수술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추가 검사가 필요했습니다.
경부초음파, 뇌신경센터, 내분비내과 협진을 거치며 하루하루가 긴장과 불안 속에 흘러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매일 “췌장암 생존율”, “수술 후기”, “항암 치료 부작용”을 검색하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수술, 그리고 조용한 기적
2월 9일,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셨고,
2월 11일 원위부췌장미부비장절제술을 받으셨습니다.
8시간이 넘는 수술 시간이 흘렀고, 수술이 잘 끝났다는 말을 들은 순간 저는 병원 복도에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다행히도 종양은 완전히 절제되었고, 엄마는 의외로 빠르게 회복하셨습니다.
그 시간이 제겐 너무도 소중한 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적 뒤에는 또 다른 싸움, 항암 치료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항암이라는 전쟁터
3월 20일, 종양내과 이충근 교수님과 상담 후 엄마는 폴피리녹스 항암 치료를 시작하셨습니다.
현재까지 5차 항암을 마쳤고, 매 차수마다 엄마의 컨디션은 크게 요동쳤습니다.
식욕 부진, 체력 저하, 말없이 이어지는 고통.
그 모든 걸 옆에서 지켜보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보호자인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너무도 적었습니다.
어떤 날은,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자괴감이 몰려와 스스로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보호자의 마음도 돌봄이 필요합니다
간병은 단순히 누군가를 돌보는 일 같지만,
가장 먼저 돌봐야 하는 사람은 ‘보호자 자신’이라는 걸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네가 힘들단 말 못 하는 거 알아. 근데 너도 살아야 하니까, 네 마음도 말해도 돼.”
엄마가 조용히 해준 이 말 한마디에 저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엄마는 아픈 몸으로도 여전히 저를 걱정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따뜻한 말이 제 마음을 붙잡아 주었고, 저는 다시 조금씩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치유는 아주 작은 순간에서 시작되었다
치유는 거창한 변화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그건 병원 복도에서 만난 다른 보호자의 미소,
간호사의 “보호자분도 고생 많으세요”라는 한마디,
엄마가 힘겹게 한 입 드신 죽 한 그릇이었습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그 순간들 덕분에 저는 다시 하루를 살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간병이 내게 남긴 것들
간병은 제 삶을 정지시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엇을 진짜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다시 보게 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삶의 중심에는 ‘관계’가 있고, 그 관계는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요.
저는 간병을 하며 더 성숙해졌고,
무너졌던 마음도 다시 세우게 되었습니다.
같은 길 위에 있는 당신에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간병 중이라면,
그리고 마음이 무너져버릴 것 같은 순간을 겪고 있다면 꼭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울어도 괜찮습니다.
지치면 멈춰도 됩니다.
간병은 마라톤입니다.
중간에 잠시 멈추는 것, 울고 쉬는 것, 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기억하세요.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누군가의 인생을 지켜주는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요.
이 기록은 저의 이야기이지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깁니다.
이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힘든 날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압니다.
그 고된 시간 속에도 치유와 사랑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요.